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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운전대 잡은 밤, 공문과 현실의 거리_163/QD-TTg 한국국제운전면허

by 고리스s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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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베트남 정부는 국제운전면허증 인정과 관련된 163/QD-TTg 공문을 발효했다. 한국에서 발급된 국제운전면허증으로도 베트남에서 합법적으로 운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과연 이 공문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곳은 베트남이니까.

 

급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새벽 시간에 호치민으로 향해야 했다. 지금은 베트남 최대 명절인 **Tet(설날)**이 다가오는 시기다. 연말연시는 베트남 공무원과 경찰들의 활동이 유독 많아지는 때다. 단속과 검문은 매년 이맘때 늘어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제한 속도를 13km/h 초과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단속되었다. 속도계를 확인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검문소에 선 나는 차분히 국제운전면허증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찰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경찰이 내게 내민 처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차량 3개월 압류 및 면허 정지 3개월”. 면허 정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차량 압류 3개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처사였다.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차를 압류하는 대신 벌금 30M VND을 지급하면 상황을 해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부당하고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은 새벽 4시 30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려 했지만 속은 끓어올랐다. “돈이 없습니다.” 경찰은 “얼마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나는 지갑을 열었다. 마침 지갑엔 비상금 500 USD와 업무 비용으로 준비해 둔 13M VND(약 65만 원)이 있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500 USD를 뒷좌석 구석으로 던져 숨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현금을 요구하고 있었고, 금액을 정확히 아는 순간 타협의 여지는 사라질 것이 뻔했다. 나는 “15M VND와 한국 돈 10만 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처음엔 경찰이 거절했지만, 나는 더 이상 협상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라는 말과 함께 나는 물러섰다. 그러자 경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수 분간의 협상 끝에 그들은 15M VND와 10만 원을 수락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작은 가죽 홀더 하나를 내밀며 그 안에 돈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그들이 돈을 세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돈을 밀어 넣었다. 이후 한 경찰이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구석의 상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 안에 홀더를 던져 넣었다. 잠시 뒤 그들은 나를 “풀어주었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공문이라는 것은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 2024년 2월에 발효된 국제운전면허 관련 공문이 있다 한들, 지방 공무원과 경찰들의 현실적 운영 방식은 전혀 달랐다. “법”과 “현실”의 거리는 생각보다 더 멀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공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이곳은 베트남이다. 법이 있더라도 실행 여부는 지역 공무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깨름직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이곳에서는 최선의 방어다.

나는 그날 새벽, 한 번 더 현실의 쓴맛을 보며 깊은 교훈을 얻었다. 법이 보호하지 않는 곳에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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